일상과 비(非)일상의 경계에서 사람과 환경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붙잡아 이미지로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연필, 흑연 등의 간단한 건식재로 거칠고 투박한 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라질 상상이나 기억, 감각을 재생하는 장치를 만든다.
좌/〈노우드〉 회전구동장치, 종이에 연필, 가변설치, 2018
우/〈노우드〉 회전구동장치, 종이에 연필, 가변설치_detail, 2018
수년 전 머물렀던 노우드가(街)의 어느 이층집을 회상한다. 그 집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절로 ‘삐, 삐-’하고 우는 장치를 가슴께에 심은 단정한 백발노인의 집이었다. 그녀는 거처를 잃은 이방인에게 선뜻 방 한 칸을 내주고, 모종의 거래를 걸어왔다. 그 제안을 덥석 수락한 나는 그렇게 그 길고 기묘한 겨울을 그녀의 공간에서, 연쇄하는 비일상적 사건에 맞물려 보냈다.
노파의 집을 떠난 후 나는 고의로 당시의 기억을 촘촘히 삭제했다. ...이제는 이를 복원하고자한다. 나는 실마리를 건지기 위해 잠수한다. 간신히 떠오른 공간의 모습은 숭숭 뚫린 구멍으로 가득하다. 커피포트의 모양새, 시계의 위치, 벽지의 색과 양식이 한데 뒤섞여 꿈틀거린다. 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끌어온 재료를 혼합하고 이식한다. 그렇게 그 때의 정확한 기억도 아닌, 완벽한 상상의 산물도 아닌 임의의 시공간을 만든다.
조예트로프(활동요지경)와 닮은꼴을 한 구동장치가 있다. 이는 관객의 동력을 빌어 불을 켜고, ‘드륵, 드륵-’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나와 노파의 오랜 집이다. 회전 장치와 맞물려 널리 유람하는 납작한 끈은 노우드가의 복원된 서사를 담고 있다. 크기가 서로 다른 톱니에 의해 이미지는 매순간 회전체의 그림자와 중첩되고, 매순간 그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끊임없이 재생된다.
Ryeojin Lee recalls that her long and bizarre winter at an old lady’s second-storied house at Norwood road a few years ago was a series of abnormal events. Lee intentionally erased the memory of the time and now tries to restore it. In this exhibition, in order to fill the emptiness, She combines and transplants materials gathered from here and there and creates an arbitrary time and space, which is neither a correct memory nor a complete product of imagination. A shallow string hovering with a driving machine almost looking like a zoetrope shows the narrative restored from Norwood road. Because of the different sizes of cogs, the images are overlapped with the rotating thing’s shadow at every second, and also part from it and are incessantly recreated.
구동영상 https://youtu.be/HMCbUQx4RHk
〈파들파들 찻잔〉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1
지난 3월 11일 고양이 양미는 오랜만에 문을 열고 등장한 나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나는 오늘도 ‘내가 어두운 옷을 입지 않았다면, 초대 받지 않았다면, 보러 가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를 그리워 하지 않았다면’하며 어딘가 양미가 살아 있을 우주를 상상해 그곳으로 도망친다.
오롯이, 넘치게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죽음이 나의 잘못이 아닐 단서를 찾기 위해 필사적이던 마음까지 전부,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아주 차갑고 무겁게 빚으로 남았다.
양미의 보호자는 울지 않았다. 탈진한 내게 건넨 차가 식어갈 때마다 말없이 따듯한 물을 부어 주었다. 〈파들파들 찻잔〉은 나의 흐느낌과 호흡, 불안과 죄책감으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다. 누군가의 죽음이 드러내고, 덮고, 잇고, 끊어낸 모든 사정과 까닭의 가장자리에 서서 연약한 실천으로나마 추모하는 마음을 담았다.
구동영상 https://youtu.be/tKo_vKIAQQc
〈가가도넛〉 혼합매체, 가변설치, 콜렉티브 말탁진, 2019
거대한 완구처럼 보이는 작품 《가가도넛(Gaagaadonut, ‘Gaagaa’는 ‘데굴데굴’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양자의 세계, 곧 미시세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을 담고 있다. 〈코펜하겐 해석〉의 관점에서 이중 슬릿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 전자(혹은 빛)는 관측하기 전 까지는 파동이었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된다. 다시 말해, 관측되기 전 까지 전자의 상태는 중첩된 확률로서 존재하지만 관측하는 그 순간 더 이상 확률이 아닌 한가지로 성질로 정해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릇 위를 구르는 쇠구슬은 전자에 비유되었다. 그들의 원운동은 회절과 간섭의 성질을 가진 상태, 즉 관측 전 전자의 상태가 파동임을 암시한다. 그릇 하부에는 천천히 회전하며 상부에 자력을 제공/제거하는 가변 장치가 설계되어 있다. 일정 주기로 점멸하는 장치의 영향권 안에 쇠구슬이 위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자력과 구슬은 서로를 포착한다. 마치 ‘관측자’에게 측정된 순간 비로서야 입자가 된 전자처럼, 쇠구슬은 움직임을 멈추고 일정 시간 표면에 붙잡힌다.
관측이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많은 비판이 따랐지만, 과학에서의 ‘관측’, 넓게는 ‘본다’라는 당연한 행위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은 틀림없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예술 역시 말 그대로 ‘본다’는 행위로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며, ‘보이는’ 행위로 표현하는 다분히 시각적인 학문임에 반해, 창작의 주체로서 ‘본다’는 개념 자체를 언어적 틀 안에서 한계지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닐스 보어(N. Bohr)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고 말했다. 미시세계를 거시세계로, 거시세계의 인간의 언어로 가져오는 순간 설명할 길이 없다는 말이다. 본 작업에 앞서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 언어의 방법론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간신히 잡히는 양자 개념과 재료를 연결하며 미시세계에 대한 시각화, 이미지 언어화를 실험하는 과정은 어두운 상자에 손을 넣고 더듬어 길을 내는 경험과도 같았다. 부분으로 존재했던 기계장치를 처음 조립하자 악기 같기도 하고, 획을 가진 고대 문자 같기도 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따닥’하며 끝없이 귀청에 닿는 쇠구슬의 잦은 울림은 어느새 선이 되어 고요한 감각을 선사했다.
콜렉티브 말탁진(조말, 이호탁, 이려진) 협업 작품
좌/〈합의된 꿈〉 혼합매체, 가변설치, 봄로야x이려진, 2019
우/〈등〉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9
사유지는 ‘거리감’에서 파생한 언어, 문장, 대화, 동작 등의 공통사항을 갖고 공동 및 개별 작품을 만든다.
멤버 네 명은 ‹공동의 문서›에서 한 시간 동안 백지 위를 활보하며 함께 문장과 대화를 구축하며, ‹보폭을
맞추면›에서는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과 함께 걷는 움직임을 선보인다. ‹합의된 꿈›에서는 콜렉티브의
구조, 구성원의 태도 및 필요성이 연상되는 꿈속 장면을 각색하여 문장과 드로잉, 오브제를 만들며, 시나리오의 마지막 문장은 빈 칸으로 남겨 관객이 직접 완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를 통해 협업을 위한 개인의 과정과 답을 찾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포착하고 기록하여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구동영상 https://youtu.be/y5UWopXwdn0
좌/〈리모델링 사건〉싱글 채널 비디오, 00:01:22, 2011
우/〈리모델링 사건〉싱글 채널 비디오_detail, 00:01:22, 2011
텔레비전이 디지털화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뚱뚱한 브라운관 TV로는 이미지를 수신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거실 한 가운데에서 언제나 위풍당당하던 TV가 어쩐지 머쓱해 보였다.
우리집 TV는 채널 2번에서 24시간 집 앞 놀이터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곤 했다. 놀이터를 비추던 CCTV의 화질은 매우 거칠어 TV로 송출된 화면으로는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이 채널을 이용하지 않을 거란 속단이 무색하게도 나는 어느새 실시간으로 사라져버리는 화면에 현혹되어 매일 놀이터가 가장 붐비는 시간에 TV 앞에 앉았고, 급기야 습관적으로 녹화를 걸어 화면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하릴없이 비디오테잎을 돌려보던 어느 날, 친구들을 모아 나의 놀이터 비디오 콜렉션에 출현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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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마치고 사흘 뒤 놀이터는 리모델링되어 옛 모습을 감추었고, 덩달아 CCTV도 사라졌다. 더 이상 02번 채널에서는 놀이터의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2012년 대한민국 아날로그 방송은 최종 종료되었고 어느새 브라운관 TV도 모습을 감추었다.
좌/〈회전 연구〉 종이에 연필, 가변설치, 2010
우/〈회전 연구〉 종이에 연필, 가변설치, 2010
〈회전 시리즈〉를 갈무리하기 위하여 회전에너지를 동력 자원으로 이용한 근대 발명품을 수집했다. 각각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고안된 최초의 디자인을 드로잉하여 기록하고, 판지로 수동 동력 장치를 만들어 모방하였다.
전작 〈수도꼭지〉를 가감하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도꼭지의 작동 원리인 ‘회전’이라는 행위만을 남겨 〈회전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많은 장치들이 회전의 원리로 작동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회전을 통해 도출되는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에 빗대어 시각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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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에 대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해 인터뷰했다. 느릿하게 선회하는 삼각기둥 회전체에 인터뷰 영상을 투사하여, 스크린의 움직임에 따른 영상의 변형을 꾀했다.
첩보 영화를 보면 임무는 요원에게 항상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전해진다. 가로등이 모스 기호로 깜빡인다거나, 무심코 걷던 길의 공중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식으로 말이다. 모든 감각이 예민함에 틀림없을 요원은 기민하게 사인을 알아차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메시지를 수신한다.
어느 가을 나는 등굣길 구석지에 수도꼭지 하나가 새로 심어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비밀 요원이 된 양, 땅에서 솟은 그 수도꼭지를 오랫동안 살피고 신경 썼다. 새 수도꼭지인데 물이 나오지 않으니, 충분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같은 방식으로 임무를 숨긴 수도꼭지를 하나를 만들었다. 나의 수도꼭지는 오늘도 같은 곳에서 요원을 기다리고 있다.
〈대화 상자〉 종이, 필름, 가변설치 124cm x 37cm, 2010
서로를 마주하기 위한 기다란 상자가 있다. 각자의 위치에는 조명의 볼륨을 제어하는 단추가 있고, 상자의 허리께에는 필름이 가로질러 공간을 나눈다. 두 공간의 조도 차이에 의해 필름의 투과도는 달라진다. 조도가 상대적으로 어두운 쪽에서 맞은편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밝은 쪽에서 어두운 곳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자신의 모습만 필름에 반사되어 보일 뿐이다.
관객은 상자 앞에 마주하고 서서 임의로 조도를 제어한다. 조도의 변화에 따라 반사된 나의 모습과 마주하거나, 필름 너머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화 상자〉 안의 두 주인공이 동시에 상면하여 서로를 바라볼 가능성은 없다.